기록
한국 산림녹화 기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야기
한국 산림녹화 기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야기
목차
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의미
2025년 4월, 유네스코는 대한민국의 ‘산림녹화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MoW)으로 등재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신기했다.
숲을 다시 일군 것도 대단하지만, 그게 과연 ‘기록유산’으로 인정받았다는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건 단순히 나무를 심은 기록이 아니다.
전쟁과 가난, 민둥산과 굶주림 속에서 한 세대가 어떻게 공동체를 통해 국토를 다시 일으켰는지를 보여주는 ‘국가 재건의 서사’였다.
그 과정에서 생산된 공문서, 사진, 포스터, 보고서, 회의록, 동영상 등 9,619건의 기록이 한 세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유네스코는 세계기록유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 기록유산으로, 전 인류가 공유해야 할 기억(Memory)이다.”
즉, 대한민국의 산림녹화 기록은 한 국가의 성공 사례를 넘어서 기후위기, 생태파괴,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전 세계적 과제에 실질적인 힌트를 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등재가 민간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정부가 아닌 퇴직 산림공무원들과 연구자들로 구성된 ‘한국산림정책연구회’가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록을 수집했고, 첫 번째 등재 시도가 반려된 이후에도 7년 넘게 묵묵히 보완 작업을 이어갔다.
그 결과, 2025년 4월 유네스코 세계 기록물 국제목록(MoW International Register)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조림에 성공한 나라는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국토 대부분이 민둥산이었던 나라가, 절대적인 가난 속에서 국민적 동원과 공동체의 힘으로 숲을 되살린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록을 모아 세계유산으로 만든 것도 그렇고, 이 기적의 스토리를 데이터로 남긴 것도 우리밖에 없다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이제 이 기록은 단순한 ‘종이더미’가 아니라,
다음 세대와 인류 모두를 위한 ‘녹색 기억의 아카이브’가 되었다.
2. 무너진 국토, 다시 심기 시작한 나무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지만, 1960~70년대의 대한민국 산은 말 그대로 민둥산이었다.
전쟁이 휩쓸고 간 후, 사람들은 땔감을 위해 나무를 베고, 산에 불을 질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불법 벌채, 화전(火田), 연료 수급 문제까지 겹쳐 국토 대부분은 삭막한 황토색 벌판으로 변해갔다.

유엔은 당시 한국의 산림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절망은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되었다.
전후 우리나라 정부는 산림녹화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공무원은 물론, 학생, 군인, 농민까지 전 국민이 강제적 혹은 자발적으로 나무를 심었다.
당시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시찰하러 가면서 정작 도로가 아닌 “주변 산만 바라봤다”는 유명한 일화는
그가 숲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 시기에는 검목제도가 도입되어, 지역 공무원들은 묘목이 잘 살아남았는지(활착률)에 따라 승진이 좌우되었다.
나무를 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도록 책임지는 조림이 원칙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숲 복원’을 넘어 국가 경제와 삶의 방식을 바꾸는 운동이기도 했다.
연탄 보급이 늘면서 땔감 수요가 줄고, 화전민에게는 정착지와 직업을 제공해 산에서 벗어나게 했다.
산림녹화는 단순히 “나무 심기”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에너지 체계의 대전환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던 구조다.
산림계(山林契)라는 지역 자치조직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나무를 관리하고,
협동과 인센티브로 이어지는 ‘풀뿌리 조림’이 가능했던 배경이 되었다.
3. 산림녹화 기록물의 구성과 수집 과정
유네스코에 등재된 ‘산림녹화 기록물’은 단순한 행정서류의 묶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전 국민의 땀과 의지, 한 시대의 선택과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록물은 1945년 광복 이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산림청, 내무부, 각 지방자치단체, 영림서, 국유림 관리소, 산림계, 양묘협회, 학회 등 산림과 관련된 거의 모든 기관에서 생산된 문서와 시청각 자료로 구성된다.
총 수량은 1만여 건, 그 중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9,619건이다.
형태도 다양하다.
- 행정 문서 (공문, 법령, 산림청 회의록 등)
- 보고서와 실태조사서
- 조림일지, 직무교육 자료
- 사진, 영상, 포스터, 표어
- 복지조림조합 결성 기록
- 산림계의 규약과 참여 명부
- ‘화전정리업무지침서’ 등 현장 중심 자료
흥미로운 것은 이 기록들을 누가, 어떻게 모았는가이다.

산림녹화 기록물의 등재는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의 ‘재능기부’로 시작되었다.
2016년부터 퇴직 산림공무원들과 산림학자들이 모인 ‘한국산림정책연구회’가
7년간 매주 3일씩 사무실에 출근하며 직접 전국을 돌며 기록을 발굴하고 복원했다.
처음엔 예산도 없이, 사비로 복사비를 내며 기록을 모았다.
1차 등재 시도는 ‘정부 위주의 기록물만 있고 민간 참여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이에 연구회는 산림계, 마을 자치문서, 주민 수기 등 ‘민초조림’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물을 보강했고,
결국 2024년 조건부 가결을 거쳐 국제 등재로 이어질 수 있었다.
특히 이번 기록물 중에는
- 활착률에 따른 공무원 승진 자료
- 복지조림 투자 배당 문서
- 전국 산불 발생 보고서
- 포항 영일만 황폐지 복구 일지
등이 포함돼 있어, 당시 녹화가 일회성이 아니라 구조화된 정책이었음을 보여준다.

한 문서 한 문서가, 그 시절의 숲을 되살리는 시간의 단서이자,
그대로 세계가 참고할 수 있는 정책 매뉴얼이 된 것이다.
4. 산림녹화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나무를 심는 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간다.
우리나라는 ‘산림녹화’라는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단지 풍경만 바꾼 것이 아니라, 생태계, 경제, 공동체 문화, 국가 이미지까지 전방위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숲은 단지 나무 몇 그루의 집합이 아니다.
대기질을 정화하고, 미세먼지를 잡고, 온실가스를 흡수하며, 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홍수를 막아준다.
기후위기 대응의 최전선이 바로 숲이다.
하지만 이번 산림 녹화 유네스코 등재에서 인정받은 유산은 사람들의 협동 방식이다.
산림녹화는 단순히 국가가 돈을 들여 조림을 한 것이 아니다.
산림계라는 마을 단위의 자율 공동체가 산림을 스스로 지키고, 규칙을 정하고, 벌칙을 부과하며 관리하는 구조였다.
또한, 이런 한국의 사례는 국제원조 모델로도 확장될 수 있다.
단순히 나무를 대신 심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 마을 주민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 우물을 파주고,
- 수익을 배분하며,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참여형 조림’ 원칙은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산림녹화는, 단기간의 생존 전략이 아니라 장기적인 생태 전환, 공동체 회복, 그리고 정책의 사회적 내구성을 입증한 사례였다.
5.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숲의 미래
사실 처음엔 ‘산림녹화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뉴스를 보고, “아, 그런 것도 세계유산이 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팔만대장경이나 훈민정음처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유산이 아니라 ‘문서와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관련 내용을 조금씩 찾아보면서, “아, 이건 그냥 숲이 아니라 한 세대가 쓴 서사이자 투쟁의 기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민둥산에서, 다 같이 나무를 심고 지키면서 경제도, 마을도, 공동체도 동시에 재건해낸 이야기를 실제로 남겨두고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는 것.
그 자체가 정말 수십년간의 대장정이었다는걸 이번에 알게되었다.
그리고 이런 과거의 노력이 민간단체에 의해 수집되고 발굴되어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는것에 자부심을 가지지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개인이 조림을 하기도 어렵고, 간벌이니 조경이니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등재이야기를 통해 그저 있는 줄만 알았던 숲이 사실은 몇십 년 전 어떤 사람들의 노력과 정책, 실천과 실패, 그리고 기록의 결과라는 걸 알게되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자랑스럽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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